아기 데리고 ktx 기차 타기 기차여행
이번에 31개월인 우리 아기를 데리고 ktx 기차를 타고 친정에 다녀왔다. 그동안은 항상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녀왔는데, 우리 집 현관부터 친정 현관까지 휴게소에 머무르는 시간 포함 총 7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보니 운전하는 남편에게 늘 미안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남편은 집에 두고 아이와 둘이서 기차를 타고 가보기로 했고, 아기와 ktx 타 본 경험을 나름대로 기록으로 남겨보려 한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아기와 기차 여행
나는 어릴 때 부모님과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기차 안에서 삶은 계란도 먹고, 오징어도 먹는 등 뭔가 왁자지껄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상상하며 이번에도 기차를 예매했다. 우리 아기와 둘이서 '엄마와 아기가 함께 하는 첫 기차 여행'의 타이틀과 같은 느낌으로 추억을 쌓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기차 출발일 전날 남편이 나에게 '유아동반석으로 예매했어?'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나는 그런 걸 전혀 몰라서 '그게 뭔데?'하고 찾아봤다가 다른 엄마들의 후기를 본 후 갑자기 아이와 함께 기차타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훅 떨어지게 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과는 달라진 기차 여행의 풍경
ktx의 유아동반석에 대한 후기를 찾아본 후, 어릴 때 기차여행의 추억을 생각하며 그걸 실행해 보고자 했던 내 로망은 한 마디로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발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에게 기차표를 예매할 당시 내가 가졌던 로망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무슨 40년 전 이야기를 하고 있냐며 핀잔을 주었다.
일단 요즘은 기차에서(특히 ktx에서) 옆사람과 이야기를 하며 시끄럽게 하거나, 간식을 먹거나 하는 등의 행위는 거의 금지된 분위기라고 한다. 나는 친정이 멀긴 하지만 그동안 기차보다 저렴한 고속버스를 타고 계속 다녔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 타던 기차와 달라진 지금의 ktx의 분위기에 대해 예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리고 코로나 때도 기차를 타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 말도 안되는 수십년 전 추억을 실행해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아기들의 소리를 싫어하는 사람들
나는 스무살 때부터 집을 떠나 자취를 했기 때문에 아주 예전부터 비록 기차가 아닌 고속버스이긴 하지만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해 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옆자리, 혹은 주변자리 사람들을 잘 만나야 한다. 시끄럽게 통화를 한다거나, 우는 걸 통제할 수 없는 아기가 있거나 할 때면 그 때는 조용하고 안락한 여행은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서 나도 아기 낳기 전에는 커피숖이나 식당, 기차 같은 대중 장소에서 옆에 아기가 있는 걸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뚜렷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아기 엄마들에 대한 혐오 비슷한 것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모든 건 나에게 돌아온다고 했던가.. 그런 내가 아기 엄마가 되었다. 아기로 인해서 조용히 해달라는 이야기를 많이는 아니지만 영유아 도서관 같은 곳에서 들어본 적이 있다. 우리 아이처럼 아직 어려서 통제가 안 되는 어린 아기들을 위한 도서관이었는데도 말이다! 그 후로 나는 아기를 데리고 어디를 다닐 때마다 눈치를 먼저 챙기기 시작했다. 커피숍에 아이를 데려가도 내가 원하는 장소보다 아이에게 시끄럽다는 눈치를 주지 않을만한 곳으로 자리를 잡았고, 아기를 조용히 시켜달라고 지적받은 도서관에는 더 이상 가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TX를 예매하고 타기 전날까지도, KTX 내의 사람들이 아이들이 내는 소리에 대해 직원들에게까지 민원을 넣어 조용히 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결혼 전 아이들의 소리로 방해받는 걸 싫어하는 나였지만, 그런 나조차 애를 좀 조용히 시키라고 이야기한다거나 직원에게 민원을 넣는다거나 하는 건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생들처럼 통제가 되는 아이라면 모르겠지만, 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 아기들은 부모조차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정도의 이해는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KTX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굉장히 소음에 민감하다고 한다. 기차 내에서 방해받지 않고 책을 보거나, 폰 하거나, 아니면 조용히 잠을 자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거의 절간 같은 분위기라고 하고, 그 분위기와 그 시간을 방해 받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굉장히 싫어한다고 한다. 애가 떠든 것도 아니고 그냥 뭐 한마디만 물어봐도 조용히 시키라고 화를 내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후기도 많고, 애가 옆자리에 앉은 걸 보자마자 한숨을 쉰다거나 짜증 섞인 불만을 혼잣말이지만 들으라는 듯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봤다는 엄마들의 후기를 보고 나서야 아기와의 기차여행을 내가 너무 만만하게 봤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각종 간식과 스티커북, 낮잠 시간 등으로 무사히 해낸 기차여행
여러 후기를 보고, 아이를 기차 안에서 재우는 게 최선의 길임을 깨닫고 만발의 준비를 했다. 출발하는 날은 오전 11시 기차였고, 돌아오는 기차는 오후 5시 기차였는데 이 시간에 어떻게든 재우려고 애를 좀 썼다. 오전 기차인 날에는 아침 6시부터 자는 애를 깨웠는데, 덕분에 오전 11시 기차 안에서 한 시간 정도 논 후에 바로 잠들었다. 돌아오는 기차는 저녁 시간 기차였는데 낮에 어떻게든 안 자도록 꼬시고 깨워서 기차를 타자마자 두 시간 동안 애가 깨지도 않고 곯아 떨어졌다. 기차 안에서 깨어있었던 것은 출발하는 날 한 시간 동안이었는데 다이소에서 산 뽀로로 스티커북을 쥐어주고, 평소에 잘 못 먹게하는 과자도 실컷 먹게 했더니 아주 조용히 잘 있어 주었다. 그리고 다행히 우리 앞자리에 젊은 남자 무리들이 함께 여행하며 떠들어주어서 우리 아이에게 관심이 올 틈이 없었다. 엄마들 후기 중에 아기 데리고 기차를 타면 단체로 여행하며 떠드는 사람들이 그렇게 고맙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딱 그 마음이었다. 그렇게 우리 아기와의 첫 기차 여행은 성공적으로 무사히 끝났다.
아기와 아기 엄마를 혐오하는 사회 분위기?
내가 아기 엄마가 되어 보니, 그래도 아직은 아기 데리고 외출하면 대부분은 좀 배려를 받는 편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도, 지하철에서도, 공공장소에서도 거의 항상 배려를 받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공공장소 같은 곳에 가면 내가 애를 데리고 있으니 내가 우선이고 나와 우리 아기를 배려해 주겠지 하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당연하게 했던 것 같다. 이렇게 스스로를 당연시 여기는 생각이 좀 과해지고 자중을 못하게 되면 그 때부터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이 왜 아이와 아이 엄마에 대한 혐오를 가지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개인주의로 바뀌고 이기적으로 바뀐 사람들의 성향탓도 있겠지만 무개념 부모들이 설쳐대는 탓인 것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 ktx 기차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것과 관련하여 아이를 데리고 타지 않는 일반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애가 좀 떠들더라도 부모가 나서서 조용히 시키고 조심하면 자기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양해해줄 의사가 있는데, 애가 떠들어도 조금도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고 조용히 시키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아기가 떠드는 건 당연하니깐 다른 사람들이 이해해 줘야 한다는 식의 태도를 부모가 보이는 것 때문에 화가 더 난다는 의견들도 꽤 많았다.
아기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것에 사람들이 눈치를 주고 불만을 표시하는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애를 키우고 출산율이 늘어나겠냐며 한탄을 하고, 반대의 입장에서는 무개념 부모들 때문에 아이들까지도 너무 싫어지고 질렸다며 혐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등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기 보다는 대놓고 마냥 싫어하는 것이 요즘의 세태인 것 같다. 남녀 갈등, 정치이념 갈등, 세대 갈등 등 우리 사회 깊숙히 파고들어 있는 이 혐오와 갈등의 정서가 참 슬프고 속상하다.
어쨌거나 우리 아기와의 기차여행은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아이와 기차여행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한 번 해보니 그냥 한 번 해 본 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나의 어린 시절처럼 기차 안에서 마음껏 이야기하고 떠들고, 맛있는 것도 실컷 먹을 수 있는 기차여행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아이가 떠들어서 주변 사람들이 화낼까봐 노심초사하고, 기차에서 재우려고 졸려하는 아이를 억지로 깨우는 노력까지 할만큼 중요한 경험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좀 더 커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그 때라면 아무런 부담과 걱정 없이 아이와 기차여행을 또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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